2015년 9월 22일 화요일

1987년 오대양사건,32명 떼죽음 사건 그 진실은...미제사건

1987년 오대양사건,32명 떼죽음 사건 그 진실은 무엇일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미궁의 사건.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공예품 제조업채 오대양의 공장 천장에서 시신 32구가 발견된다.

시체들은 손발이 묶여 있거나 목에 끈이 감긴체 발견되었다.
장소는 식당 천장.

그들은 왜 죽은 것일까?

당시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해따.

이를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라고 한다.

당시 오대양 대표는 박순자 씨.

사건의 발단은 채권자 부부가 11시간 동안 감금,폭행당한 사실을 경찰에 알리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채권자 부부는 오대양측에 5억원을 빌려줬는데 갚으라며 회사를 찾아갔으나 돈은 못 받고 11시간 동안 감금,폭행 당한 것.

경찰은 박 대표를 소환 했고, 직원 10여명을 구속했으나, 박 대표가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쓰러져 병원에 옮겼고, 그녀는 병원에서 탈주했다.

경찰은 추적했고, 당연히 공장도 뒤졌다.
그러자 공장 구내식당 천장에서 32구 시체가 나왔는데, 그 안에 박 대표도 있었다.


사회는 발칵 뒤집혔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5공 비호설,기독교복음침례회 구원파 배후설 등.
흉흉해진 사람들의 마음.

한편, 경찰은 박 대표가 채권자들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리자 자신을 따르던 신도들과 집단 자살한 것으로 수사를 종결한다.
당시 박 대표는 사이비 교주로 행세하던 터.

기숙하면서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당시 군대 만큼이나, 아니 더 혹독할지도 모르는 야간점호 같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온갖 추측은 경찰의 결론 한 가지로 종식된다.
바로 "구원파와 오대양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



이렇게 해서 오대양사건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잊혀지게 된다.

하지만, 4년 뒤~!!!

1991년 7월 오대양 사건 관련자들이 자수를 한다.
그리고 다시 재수사에 들어가는 오대양사건.
또 다시 구원파가 배후가 아닌가 거론이 되고,
다시 경찰은 구원파와 오대양 사건의 연관성을 증명할 증거를 찾지 못해 수사를 마무리 한다.

이렇게 해서 다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잊혀진 사건이 되는데...
가끔씩 미제사건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했지만,
작년 2014년 세월호침몰 사고로 다시 오대양 사건이 거론된다.
이유는 세월호 운영 선박회사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연관성으로 일가족을 추적하는 검경, 순천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으로 추정되는 사체, 신고를 했으나 이를 그냥 지나친 경찰서, 유병언 일가족 일부의 해외 도주, 세월호 희생자 보상문제 등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전체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더불어, 오대양 사건 등도 미제로 남긴 했지만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세간의 추측만이 남은 사건이다.

이렇게 오대양 집단 변사체로 32명의 떼죽음은 자살인지,타살인지 밝혀지지 않고 아직도 미궁에 빠진상태로,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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